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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 네이버 카페 Watch 119 by 호밀밭 ]

 

우리가 사랑하고 즐기는 시계, 그 다이얼과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의 디자인에는 수세기를 걸쳐 온 역사가 스며있습니다. 필립 듀포가 하듯이 무브먼트의 부속 하나 하나를 보석처럼 피니슁한데서 느끼는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손목시계는 무브먼트 말고도 그 외형의 디자인에서도 많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습니다. 거기에 숨겨진 바로크시대의 유산을 설명하는 멋진 글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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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The Sun King)
State Portrait of Louis XIV by Hyancinthe Rigaud (1659-1743)

 

손목시계 애호가인 우리들의 대부분은 손목시계 디자인의 고전적인 요소들이나 기능적인 요소들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곤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대정신은 손목시계를 장식품으로 보는 것은 범죄라고 주장한다. 비록 이 세상에서 대체적으로 시계는 필수적인 장비로서 보다는 장식적인 장치로 더 자주 사용되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 손목시계의 사이즈가 대형화되는 열풍을 생각해보라. 이 대형화 경향은 아주 큰 사이즈의, 마치 어떤 메달(medallion)을 닮은 장식품과 같은 시계를 만들게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수 세기에 걸쳐 더 작고 더 얇은 시계를 제작하기 위한 기술적인 노력을 무위로 돌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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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 오페라

 

손목시계 애호가들 중에는 보석류나 화려한 장식이 시계에 부착된 것을 좋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비록 이러한 장식이 충만하게 넘쳐나는 삶의 기쁨(joie de vivre)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고 하다라도 이를 자신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시계애호가들의 일부는 시계는 수수하고 정갈하여야 한다는 신조에 반대하며 시계의 화려한 겉치장에 흠뻑 빠져들기도 하지만 또 다른 시계애호가들은 현대의 스위스 시계가 바로크 시대로부터 은밀하게 물려받은 몇 가지 잘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적 요소들에 대하여 전율을 느낄 정도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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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베(Bovet)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바로크 시대에는 시계라는 기계를 진기한 것, 예술, 보석, 장식품, 감동을 주는 것으로 여기면서 진실로 이것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놓고 찬미하였다. 바로크 시대의 초기인 16세기에 펜던트(pendent)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내는 보석제품이었다. 이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바로크 시대에 시계란 오로지 왕족, 귀족, 부유한 상인들만이 걸칠 수 있는 펜던트였다. 어떤 면에서 볼 때 기계식 시계가 현재에 다시 부흥한 것은 바로 사람의 손목(the wrist)을 위한 훌륭한 펜던트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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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스 나르덴 Portobello

 

우리가 바로크적이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는, 장식적이며 세공을 중시하는 스타일의 근원은 이탈리아의 로마교황청이 바티칸궁전을 웅장하고 호화롭게 리포매이션한데서 찾을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가 역사에서 사라졌던 고전적인 양식들을 다시 한 번 부흥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크 시대에는 비잔틴 문화와 더불어, 그리고 비잔틴의 예술처럼 이탈리아의 바로크 문화의 예술품들은 일차적으로 종교적인 이미지들과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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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스 나르덴, Ulysse Nardin Tellurium

 

오스만투르크에 의하여 1453년에 비잔티움(콘스탄틴노플의 옛 이름,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이 완전히 정복되어 멸망될 때까지만 해도 로마의 카톨릭 교회는 오랫동안 그 라이벌이었던 동방정교회의 동양적인 사치스러운 취향을 배척하고 삼가 왔다. 그러나 성베드로 바실리카 교회당을 재건축하면서, 비록 르네상스 시대에 이 재건축이 시작되었지만 그 재건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비잔티움에 세워져 있던 콘스탄틴 바실리카 교회당의 호화로움을 능가하려는 의도 아래, 성베드로 바실리카 교회당을 이탈리아 바로크 예술의 최고의 정수로 만들었다. 바로 거기로부터 고도로 세련된 장식미를 지닌 예술적 스타일이 로마에서 뻗어 나와 전 이탈리아를 휩쓸었다. 그리고 태양은 서쪽으로 프랑스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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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드로 바실리카 교회당

 

스페인이 몰락하고 대영제국의 영광이 아직 빛나는 시기가 아직 도래하기 전, 프랑스는 유럽에서 거의 “제왕적인(Imperial)" 파워를 행사하는 최고의 국가였다. 이 시기에 시계제조분야에서도 1525년에 이르러 파리(Paris), 디존(Dijon), 블로이(Blois)에 워치메이커들이 밀집하여 모여든 형태가 확립되고, 1544년까지 프렌치 워치메이킹 길드가 설립되면서 영국과 독일의 시계제조업을 압도하게 된다.

 

루이 14세(1638-1715)와 이탈리아 바로크 예술의 정교한 화려함과의 조우는 그의 이름을 따서 사치스럽고 부유하기 이를 데 없는 “루이 14세 스타일”-프렌치 바로크 예술의 심장이며 영혼- 을 만들어 내었다. 선왕인 루이 13세가 왕립예술원(Court Art) 제도를 확립한 덕택에, 루이 14세는 프랑스 내에서 다양한 그림, 조각, 건축 아카데미들을 통하여 대부분의 예술형식에 대하여 군주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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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C 다빈이 "사계절" 뚜르비용

 

유럽의 많은 군주들이 이미 그랬던 것처럼, 루이 14세도 자기 자신을 고대 로마의 황제의 후계자이며 그 동격에 있는 것으로 스타일화했다. 이러한 스타일과 예술분야에 대한 그의 파워를 가지고, 그는 그 자신을 비잔티움 예술의 호화로움으로 치장함으로써 “Divine Right(신이 준 왕권)”으로서 왕에게 부여된 신격을 드러내었다. 이탈리아의 바로크 예술이 신을 영광되게 하기 위하여 노력했던 것처럼, 프렌치 바로크는 모든 영광을 태양왕(루이 14세의 별명)에게 바쳤다. 비록 프랑스 건축물의 외관과 구조에는 고전적인 로마양식이 남아 있었지만, 실내 장식과 개개인들의 몸치장은 동방의 사치스러움에 함빡 빠져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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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노 전쟁

 

위그노란?
 프랑스 프로테스탄트 칼뱅파 교도에 대한 호칭. 프랑스 대서양 연안의 상공업이 발달한 지역에 자리하고 있던 위그노들은 당시 제철, 염료, 화학 등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의 찰스 2세는 특별 이민법을 만들어 이들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들의 기술로 인하여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 또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 기술이 100년이나 뒤 떨어졌던 독일도 약 30,000명의 위그노들을 이민시켜 기술 대국의 반열에 오를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 독일뿐만 아니라 18세기 초 미국도 위그노들의 탄약기술을 가져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비록 루이 14세가 시계에 대한 위대한 옹호자이자 소비자였고, 그의 통치기간 내내 자주 시계제작자들에게 하사품을 내리기도 하였으나 그가 1685년 “Edict of Names"라는 포고령을 취소하는 바람에 (이로 인하여 종교적으로 프로테스탄트를 박해한 듯하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시계제작자들을 프랑스로부터 제네바, 독일, 영국으로 몰아내게 되었다. 영국은 이 사태로 많은 시계제작자들을 얻게 되어 시계제작기술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프랑스가 시계제작에서 기술적 우월성은 상실하였으나 그 주변 국가들의 시계제작에 대하여 엄청난 미적 영향력은 계속해서 유지하여 간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바로크 스타일의 공예품 제조의 중심이었고 이를 온 유럽에 수출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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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엔진(rose engine) 다이얼 워크

 

바로크 시대의 시계 다이얼들은 주로 은, 금, 금박을 입힌 황동이 사용되었고, 여기에 굵은 로마숫자를 새겼다(engraved). 보다 정교하고 장식성이 있는 다이얼의 조각(engrving)은 1650년경에 이르러서 보다 보편화되었는데 이는 “rose engine"선반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게 되었기 때문이나. 로즈 엔진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보다 쉽게 정교한 풍경이나 인물 같은 대상들을 다이얼에 새길 수 있게 되었다. 로즈 엔진은 지금도 프랑스에서 정밀한 목공예 분야에서 일반적인 세공기계로 활용되고 있고, 오랜 기간동안 Laguiole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칼에 새겨지는 특징적인 장식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었다.

 

위에서 본 IWC의 다빈치 “Four Seansons" 뚜르비용은 그 다이얼에서 프렌치 바로크의 신화적이고 우화적인 테마(종교적인 테마가 아니라)를 강조한 전형적인 작품이다. 루이 14세나 그와 동시대 사람들은 시계의 다이얼에 자기 자신들을 신화적이나 우화적으로 묘사하게 함으로써 특별한 기쁨을 얻었다. 기구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손으로 새겨진 것이든, 로즈엔진의 도움을 얻어 새겨진 것이든, 조각된(engraved) 귀중한 금속제의 다이얼들은 현재 거의 제작되지 않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게 생산된다. 이 다이얼들은 오직 소수의 마스터 워치메이커들에 의하여만 만들어지거나 한정판의 작품으로 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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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 Les Complications

 

프렌치 바로크 시대에 시계다이얼에 에나멜을 페인팅하거나 칠보(금, 은, 구리 따위의 바탕에 갖가지 유리질의 유약을 녹여 붙여서 꽃, 새, 인물 따위의 무늬를 나타내는 공예)세공을 하는 전통도 시작되었는데 전투장면, 목가적인 풍경, 인물의 초상화, 인도와 아프리카의 동물 같은 이국적인 소재는 물론 앞서 본 바와 같은 신화적이고 우화적인 테마를 그렸다. 색(colour)은 고전양식의 바로크 장식품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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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게 "Hora Mundi"

 

조각된(engraved) 다이얼 작품이 현재에는 거의 제작되고 있지 아니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이얼에 에나멜 페인팅과 칠보세공 작업을 하는 경우는 오늘날 매우 희귀하며, 율리스 나르덴(Ulysse Nardin), 보베(Bovet),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과 같은 소수의 스위스 워치메이커의 공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 시대의 케이스 디자인은 다이얼 작업과 마찬가지로 매우 화려하였다. 크고 두꺼운 케이스들은 보통 금박을 입힌 은이나 황동으로 제작되었으나 때로는 금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케이스를 제작하는데 기울여진 정교한 노력으로 인하여 때때로 케이스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조각품으로 탄생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케이스의 표면의 대부분을 세밀한 조각(engraving)으로 다듬거나 에나멜 작업을 하는 것은 당시의 유행이었다. 마지막 마무리는 무거운 금으로 된 체인을 시계에 연결하는 것으로써 시계를 벨트나 목에 걸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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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마 피게 밀리너리

 

이 시대들의 유산은 현재 많은 곳에서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희미한 형태로 발견된다. 오늘날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의 밀레너리 콜렉션에서 볼 수 있는 오벌 케이스는 초기 바로크 시대(약 1570년부터 1630년까지)를 오랫동안 풍미한 디자인이었다.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Parmigiani Fleurier)의 매우 섬세한 케이스 세공은 그리스-로마적 요소의 디)자인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여 바로크 시대의 감수성을 진하게 느끼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금으로 된 체인은 최근 들어서 다시 한번 그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는 손목시계의 골드 브레이슬릿에서 그 현대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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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스 나르덴 정글 미닛 리피터

 

바로크 시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 중의 하나는 automata(장난감과도 같은 자동기계, 태엽 등을 감아주면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의 사용이었다. 특히 이 automata는 시계장치에 결합되어 있었다. 비록 jaquemart(시계 다이얼이나 뒷면의 작은 상(像)이 리피터가 종소리를 울릴 때 일정한 액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 작은 상은 마치 그 소리를 스스로 내는 듯이 행동을 하게 된다. 예컨대 시계탑의 차임벨이 울릴 때 그 시계의 다이얼에 해머를 든 천사가 종을 두드리는 듯이 만들었다면 이것이 jaquemart이다)의 기원은 르네상스 시대이지만 초기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jaquemart는 세련미와 정교함을 더 해가게 되고 그 결과 더 작은 크기의 시계장치와 automata의 결합을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jaquemart는 더 이상 커다란 시계탑에서만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실내장식용으로 테이블의 한가운데 놓이는 탁상시계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jaquemart가 벨트나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펜던트 워치에 적용되게 것은 후기 로코코 시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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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게 무브먼트

 

기계를 잘 모르는 눈으로 본다면 기계란 거의 마술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테크놀로지가 발달한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은 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에 살아있는 “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현 시대의 시계에 정성스럽게 피어싱을 하고 양각으로 돋을새김을 한 무브먼트들은 그 금박을 입힌 따뜻하게 모습 안에 기계의 차가움을 감추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시계들이 바로크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보편적인 장식적인 유산은 바로 무브먼트에 금박을 입히고, 피어싱을 하고 양각의 돋을새김을 하는 등의 장식을 하는 데에 있다. 다만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는 동시대의 영국에서 행한 만큼 무브먼트에 화려한 장식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여 둔다. 나는 이러한 화려한 장식의 무브먼트들에 반감을 갖는 견해를 거의 접해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러한 무브먼트들이 탄생할 때마다 보통은 많은 갈채를 받고 있다. 브레게(Breguet),프랭크 뮬러(Franck Muller)는 이러한 무브먼트 장식에 있어서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브랜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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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와 가족 초상화

 

루이 14세가 살아있는 동안 태양왕의 프랑스의 미적 감수성은 햇빛과도 같이 빛났다. 그 후계자들과 더불어 프랑스의 영광도 시들어갔고 마침내 종말이 찾아왔다. 루이 14세는 바로크 스타일을 세속화시켰으며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크 시대의 아름다운 요소가 지금도 스위스의 몇몇 시계제작기술에 아직 남아 있음을 보게 된다

 

손목시계 디자인에 남겨진 바로크 시대의 유산: 제1부
(L'Ancien Regime Part One: Elements of the Baroque in Wristwatch Design)
카를로스 페레즈(Carlos Prez)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timezone.com/library/cjrml/cjrml0020

 

sang1ce
2015.08.20 16:33
조회 수 :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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